[매헌서포터즈3기_송승준]상하이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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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거>
송승준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가 남긴 자취 중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상하이 의거(훙커우 공원 의거, 虹口公園義擧)’일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 ‘도시락 폭탄’으로 많이 소개되기도 하는 유명한 독립운동 사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지니는 의의는 일반 국민들에게 과소평가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도시락 폭탄 독립운동으로만 인지할 뿐 자세한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함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번 글을 통해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깊이 알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군의 진저우 점령
1931년 9·18사변(만주사변, 滿洲事變)으로 일본이 관동군(關東軍)을 동원해 중국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만주를 점령하고, 1932년 1월 28일에는 상해사변(上海事變)으로 일본이 상하이를 점령하고 중국 본토로의 침략을 시도한다. 3월 일본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儀, 1906~1967)에게 통치권을 부여하며 만주국(滿洲國)이라는 괴뢰국(위성국)을 세우고,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기하여 전승기념축전을 훙커우공원에서 개최한다고 공표했다.
매헌은 대망의 상하이 의거를 결심했고, 거사의 목적은 한인애국단 「선서문宣誓文」에서 밝힌 바와 같이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고, 구체적 대상은 중국을 침략하는 일본 장교를 도륙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국제 여론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고 국내 독립 의지를 고조시키려 했다. 또한 이 거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중일전쟁을 일으켜 현실적인 독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함이었다.

▲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
매헌은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의거를 선서했으며 27일과 28일에 훙커우 공원을 검토하며 도륙의 대상과 준비 사항을 확인했다. 특히 28일에는 침략자 일본 총사령관과 함대사령관의 위치와 주변 군관민을 파악했다. 4월 29일, 매헌은 김구 단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폭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새 시계를 김구의 헌 시계와 바꾸어 가졌다. 훙커우 공원으로 향하면서 중국인 문지기에게는 일본인으로 속이고 통과한 매헌은 의탄(義彈)을 투척할 준비를 하였다.
역사적인 11시 40분경 일본 기미가요가 끝날 무렵 매헌은 도시락으로 된 폭탄을 땅에 내려놓고 어깨에 메고 있던 물통으로 위장한 폭탄의 덮개를 벗겨 가죽 끈이 붙은 그대로 왼손으로 안전핀을 빼면서 앞사람을 헤치고 3.6미터를 급히 돌진하여 19미터 내외 떨어진 중앙단상 위로 오른손을 통해 힘껏 투척하였다. 결국 상하이 침략의 원흉인 총사령관 시라카와육군대장은 전신에 24개의 탄편을 맞아 신음하다 사망하였고, 해군제3함대사령관 노무라해군중장은 실명하였고, 제9사단장 우에다육군중장은 다리를 절단하였다. 또 주중 공사 시게미쓰도 다리가 부러져 의족으로 행보하는 절뚝발이가 되었고, 거류민단장이며 상하이사변의 민간 원흉인 가와바다는 창자가 끊어져 다음날 사망하였다. 이밖에도 단상에 있던 주중 총영사 무라이와 민단간부 토모노모도 각각 부상하였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매헌의 의탄을 맞은 것이다.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처음 보장받은 카이로 회담
성공적으로 끝난 매헌의 의거는 다양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로 카이로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된 후 한국 독립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때 장제스(蔣介石, 1887~ 1975)가 한국 독립을 제안했던 요인이 바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였다. 두 번째로 상하이 의거를 통해 일본의 상해사변에 대한 의미를 크게 훼손시켰으며 중국에서의 항일의식을 고조시켜 한중 공동 항일전선을 구축하는 것에 기여했다. 세 번째로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의 지지를 받아 적극 후원받게 되어 독립운동에 힘이 실리게 되며,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최근 개봉한 영화인 ‘파묘’에서 극중 주연 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이 ‘윤봉길’로 나와 깜짝 놀랐었다. 영화에 대한 평은 차치하고, 요즘들어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도가 조금은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뒷면에는 많은 사회, 정치적 이유가 있겠지만 독립운동가와 일제강점기 관련 한국근대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ROTC 후보생인 나는 정신전력 수업에서 북한과 관련된 전쟁사나 군사적 현황을 배운다. 나는 사관후보생으로서 북한이 주적인 것은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와 얽히고설킨 다른 주변국들에 대한 경계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일본도 우리가 외교적으로 경계하고 함께 맞춰나가야 할 국가이므로 일본과의 역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사이다. 이번에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에 관련한 글을 작성하면서 다시한번 절감하였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참고문헌
이성섭, 「상하이 의거와 카이로회담 - 매헌윤봉길의사와 카이로선언 -」,
『2022년하계 교원직무연수 윤봉길의사와 한국근대사』 Vol.2023, 2023.
김학준, 『매헌 윤봉길 의사 평전』, 동아일보사, 2022.
사진 출처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mobile)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http://www.yunbonggil.or.kr/_memorial_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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