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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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서울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윤봉길의사의 삶과 업적을 올바로 알리고, 농촌계몽과 의열 투쟁을 위한 애국애족의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자 (사)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1988년 12월 1일에 국민들의 성금으로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 안에 기념관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1월 1일부터는 기념관이 국가보훈처 소유로 이관되어 이를 계기로 2017-2018년에 걸쳐 전시 시설 현대화 작업을 진행하여 건립 30주년인 2018년에 새롭게 재개관을 하였습니다.
효창공원 내의 의사 묘역
국민장을 치루어진 후 삼의사의 유해는 효창원 의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예산충의사
충절의 고장 수암산, 덕숭산, 가야산 기슭에 에워싸여 자리하고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의 사당 충의사를 소개합니다.
이곳 충의사는 1968년 사당이 처음 창건되고 고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준공식 겸 의거 기념행사를 거행한 바 있으며 1972년에 사적 제229호 및 보물 568호로 지정받아 수차의 정화사업을 거쳐 현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윤봉길의사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자리잡고 있는 충의사 외에도 윤의사가 태어난 도중도 내의 광현당과 청소년 시절을 지냈던 저한당이 사적지로 보존되고 있고, 윤봉길의사 기념관 및 기념탑과 어록탑이 있습니다.
- 중국 상하이 루쉰(전 훙커우)공원
- 일본 가나자와 순국지
■ 중국 상하이 루쉰(전 훙커우)공원
윤봉길의사 의거를 기념하여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현재 루쉰공원)내에 조성한 매원(梅園)과 매헌(梅軒) 기념관. 매원은 매헌 주위 6,500평방미터(m2) 넓이에 기암괴석의 경산을 꾸미고 매화나무를 그득히 심어 경색을 돋구었다
상하이 루쉰공원(전 훙커우공원) 내의 윤봉길 기념사적비와 의거현장표석 1932. 04. 29
윤봉길 사적비와 표석은 상하이의거 66주년을 맞이하여 중국 상하이 인민정부가 직접 제작하여 건립하였다. 의거 현장 표석 위치는 실제 의거 현장과는 얼마 떨어져 있다.
윤봉길의거현장 (1932. 4. 29)
윤봉길(호: 매헌 梅軒)의사는 한국인으로서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일찍이 항일구국 투쟁에 투신하여 1930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왔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일본 침략군이 이곳에서 상하이사변 전승축하식을 거행할 때 하객으로 가장하고 행사장에 들어와 폭탄을 투척하여 상하이주둔 일본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등을 폭사시키고 여러명의 일본 주요관원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현장에서 체포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네자와에서 장렬하게 일생을 마쳤다.
2015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제83주년 기념식'에 맞춰 상하이 '매헌기념관'을 재개관 하였다. '매헌梅軒'은 1994년 '매정梅亭'이란 이름으로 매헌 윤봉길의사의 의거 장소인 루쉰공원에 정자형태로 건립되었다. 2003년 매정 내부에 윤봉길의사 사적 전시관을 개관하였고 2009년에 '매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2013년 루쉰공원 전체 개보수에 따라 휴관되었다가 2015년 4월 29일 재개관 하였다. 사진은 재개관을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한 주요 내빈들이 재개관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이다.
상하이 행사는 명노승 명예회장을 단장으로 40여명의 행사단이 방문하여 쉐용용 훙커우구대외우협회장, 최재하 총영사 직무대리, 김종호 지부장 등 150여명이 참석하여 매헌윤봉길의사의 뜻 깊은 의거를 기념하였다.
■ 일본 가나자와 윤봉길 의사 순국유적지 기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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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1932년 12월 19일 윤봉길의사의 총살형을 집행한 후 시신을 노다산 공동묘지 관리사무소 바로 앞 쓰레기 하치장 사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통로에 봉분 없이 매장하고, 1946년 3월 6일 유해가 발굴될 때 까지 약 13년간 그 위를 짓밟고 다니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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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발굴 후 방치되었던 순국유적지 기념사업은 윤병석 교수와 재일 사학자 신기수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진행되었다. 1988년 신기수는 유럽 한국학회에서 윤병석 교수를 만나 윤봉길의사의 유골 발굴 경위를 기록한 『쓰레기장에서 발굴한 윤봉길의사의 유골』을 건네주었다. 이후 윤봉길의사의 동생 윤남의는 신기수와 함께 노다 묘지 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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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2년 윤남의가 '의거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일본 가나자와 순국지에 순국기념비 건립을 제의하였고, 재일본 대한민국거류민회와 함께 건립을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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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기념비에 사용되는 돌은 대한민국의 돌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서울 망우리 한양석재공업사(대표 : 이재영)에서 제작한 후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보내 건립하였다.[이수, 비신(가로 : 0.9m, 세로 : 2.7m, 폭 : 0.6m), 귀부, 바닥돌(2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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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사의 시신처리 문제를 알게 된 양심적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은 ‘윤봉길의 암장지터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鶴園裕 가나자와대학 조교수)을 조직하고, 이 같은 사실을 후세에 전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하여 회원과 재일동포들에게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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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 엔의 성금을 모금한 '윤봉길의 암장지터를 생각하는 모임'은 윤봉길의사 순국기념비에서 130m 떨어진 곳에 윤봉길의사 암장묘비(높이 : 1m, 폭 : 1.3m)를 화강암으로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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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장지적보존회' 부회장 박인조는 순국기념비와 암장묘비가 건립 된 이듬해인 1993년부터 2009년, 본인이 죽기 직전까지 16년 동안 인근에 거주하며, 암장지 관리에 헌신하였다.
2025년 12월 1일 일본 이시가와현 가나자와시 교외 이시카와에 있는 윤봉길의사 순국지를 참배한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이정수 부회장과 임원 및 회원. 가나자와 민단 및 윤봉길의사를 좋아하는모임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