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서포터즈3기_안근호]훙커우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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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서포터즈 안근호님의 게시글
<훙커우 의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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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의 주인공 4인방의 이름은 김상덕, 이화림, 고영근 그리고 윤봉길이다. 영화 속에서 나중에 나오는 윤봉길이라는 이름은 그제야 파묘라는 영화가 독립운동과 연관된 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네 명의 이름은 모두 독립운동가의 실제 이름으로, 이 중 이화림과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홍구 의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독립운동가이다.
홍구 공원에서 대한 독립을 위해 수통 폭탄을 던진 매헌 윤봉길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부인 역할로 같이 주변 지역을 조사하는 등 의거 준비 당시에 도움을 준 이화림 독립운동가의 거룩한 희생은 점점 독립운동에 대해 잊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렇다면 훙커우 공원 의거, 상하이 의거라고도 불리는 홍구 의거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구(훙커우) 공원에서는 천황 탄생 기념 및 전승 기념행사가 열렸다. 제3부의 막바지, 기미 가요 2절의 마지막 소절이 나올 때쯤 일반 관람석에서 청년 한 명이 식단 쪽으로 뛰어나와 식단 위로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정확하게 식단 위의 중앙 가와바타 와 시게미쓰 사이에 떨어졌다. 폭탄으로 인해 상하이 거류민 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는 이튿날 사망하였고, 육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한 달쯤 뒤인 5월 26일에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오른 다리를, 해군 제3함대 사령장관 해군 중장 노무라 기치사부로는 오른쪽 눈을 잃었다. 또한 무라이 총영사와 도모노 서기장은 중상을 입었다. 이후 폭탄을 던진 조선의 청년, 매헌 윤봉길 의사는 일본 관중에 의해 구타당해 졸도 한 이후, 일본군에 의해 구속되었다.
1932년 4월 29일 홍구 의거의 전말은 앞과 같다. 의거로 인해 다친 노무라 기치사부로는 지금도 논쟁거리인 동해 일본해 명칭 다툼에서 처음 1929년 일본해를 국제수로 회의에 표준화시킨 주도 인물이다. 또한 시게미쓰 마모루는 1945년 9월 2일 미합중국 해군 전함 USS 미주리에서 항복 문서 조인에 일본 대표로 참여한 인물로, 그가 절뚝거리며 들어오던 영상은 대한 사람과 세계에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거하신 윤봉길 의사의 고귀한 뜻이 결국 승리했음을 보여주었다.
엔저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J-POP을 즐기는 등 특히 20~30대에서 일본문화의 향유 비율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정작 지금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거룩한 뜻으로 자신을 희생하셨던 매헌 윤봉길 의사와 이화림 독립운동가, 김상덕 독립운동가 등을 잊어 버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 파묘의 관람자 수가 느는 만큼 홍구 공원 의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매헌 윤봉길 의사에 대한 관심도 늘었으면 좋겠는 바람을 가진다.
출처: 매헌 윤봉길 의사 평전
Japanese Sign Final Surrender (1945) https://www.youtube.com/watch?v=p7REAvk0i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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