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매헌서포터즈_김현재]매헌 윤봉길의사의 청년 시기,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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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서포터즈 김현재님의 게시글
<매헌 윤봉길의사의 청년 시기,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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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의사의 청년 시기,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안녕하세요. 매헌 서포터즈 현재입니다. 매헌 윤봉길의사는 독립운동에 관한 의지가 강했고, 3.1 운동에 자극을 받아 식민지 교육을 배격하며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당 오치서숙에서 유학자 매곡 성주록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는데요,
1926년부터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몽운동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국권을 회복하고자 개화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운동으로서 실력양성론, 자주적인 자강독립론을 주장했습니다. 즉, 시간이 소요될지라도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상실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매헌 윤봉길의사는 오치서숙에서 공부하던 18살 때, 한 낯선 젊은이가 나무로 된 묘표 한 아름에 적힌 한자를 읽지 못해 부친의 모표를 찾지 못하여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도와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중에는 뽑아온 모표 주인들의 무덤과 부친의 무덤을 전부 찾지도, 구별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윤의사는 이 사건을 겪으며 일제강점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조선 민족의 무지이니, 실력양성에 초점을 두고, 1926년에 오치서숙을 졸업한 후, 야학을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녀노소 모든 농민들이 야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농민독본을 통한 농촌계몽운동]
이곳에서 문자 보급, 한국사, 한국문화, 역사, 지리, 산술, 과학, 농자지식 등 다양한 지식을 가르쳤으며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했습니다. 매헌 윤봉길의사는 직접 교재를 집필하였는데요, 그게 바로 <농민득본>이라는 3권의 교재입니다.

제1권 조선글편에서는 소리의 갈래,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조선글 맞춤법 등을 다루는 한글의 기본을,

제2권 계몽편에서는 인사투, 격언, 편지, 백두산, 조선지도 등 예절과 일반적인 상식(민중 계몽 목표)과 조선 청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중심으로,
제3권 농민의 앞길편에서는 자주정신, 평등사상, 자유, 농민과 노동자, 양반과 농민, 농민의 공동정신 등 농민과 노동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담았습니다.
또한, 토론회, 연례 강연회, 학예회(정기적인 개최)를 개최하였으며 농촌 부흥을 위한 월진회도 조직했습니다. 이러한 매헌 윤봉길의사의 야학은 문자 보급에서 나아가 한국사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켰습니다.
한편, 1928년에 동아일보에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를 구호로 하는 문맹퇴치운동이 진행되었고, 1929년에는 조선일보에서 전국적인 차원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1931년에 동아일보가 ‘브 나르드(인민 속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즉, 매헌 윤봉길의사의 야학당 농촌계몽운동은 1926년도부터 문을 열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야학운동 활성화를 위해 독서회도 조직했습니다. 1달에 1번, 계몽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어 학습 평가와 의견 개진을 진행하고자 하였으며 독서 활성화와 야학의 학습내용에 충실하기 위해 회원들끼리 책을 돌려가면서 읽고 토론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서울에 유학 중인 사촌동생 윤신득(윤은의)에게는 독서회에서 사용할 만한 책 송부를, 공주 영명학교를 졸업한 벗 정종갑에게는 신간 잡지 등을 기탁해주기를 요청했으며 서울 배재고보 졸업 후에 낙향한 윤세희에게는 야학 강사를 요청하며 야학 운영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했습니다.

매헌 윤봉길의사는 <농민독본>을 통해 조선이 농민의 나라이며 농업 생산물은 식품, 의복, 목재, 상업, 공업 원료까지 사용될 정도로 폭이 넓기에 농민의 실력을 양성하여 부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농민독본과 야학을 설립하여 활동한 것 외에도 농민의 경제 자립을 위한 농촌부흥운동 역시 진행했습니다. ‘목계농민회’를 설립해 특용작물(고구마 재배법 개선, 누에 기르기 권장 등) 재배 생산량 증대, 공동구매조합 설립은 물론, 돼지를 무료로 주어 새끼를 낳으면, 그중 절반을 또 다른 농민이 키울 수 있게 하는 수내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즉, 더욱 효율적인 부흥운동으로 나아갔으며 목계농민회는 월진회로 발전하면서 수암체육회 운영을 통해 건강한 신체 단련과 이웃 간 친목 도모를 유도했습니다.
“장부출가생출환: 사내가 집을 떠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매헌 윤봉길의사는 1930년 3월 6일에 중국으로 향하여 대중적으로 알려진 상하이 의거를 통해 독립운동을 성공시켰습니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매헌 윤봉길의사님, 오늘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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